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문단 편집) ==== 반정부 인사 탄압과 학정 ==== 응게마의 정적 탄압과 잔혹성은 동시기의 악명 높은 독재자들인 [[이디 아민]][* [[유유상종]]이라고 아민은 집권할 적에 적도 기니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과 [[장 베델 보카사]]의 그것보다는 인지도가 낮아도 악랄함에서는 이 둘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이 둘을 능가했다. 오죽하면 당대에 응게마에게 붙은 별명이 무려 ''''아프리카의 [[폴 포트]]''''였을까? 거기다가 그의 학살이 다른 독재자들의 학살과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응게마 정도는 상대도 안 될 대규모의 학살을 자행했으면서도 적어도 비뚤어진 명분이라도 내세웠던 다른 독재자들과는 달리 응게마는 '''최소한의 명분조차 내놓지 않은 채 문자 그대로 묻지마 식으로 자국민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었다.''' 응게마 내각 관료들은 대부분 투옥되거나 살해당하는 등의 정치적인 탄압을 받았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로, 독립 직후에 선출된 의원들의 2/3가 1974년 말까지 처형되거나 '실종'되었다고 하며, 첫 내각의 장관 12명 중 10명, 국회의원 35명 중 9명이 독립 1년도 안 되어 살해당했다. 게다가 내각회의도 거의 없었으며 식민지 시절 정치인들부터 적도 기니의 독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들까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암살되었으며, 거의 모든 판사들이 해외로 도피하거나 투옥되었기 때문에 정적들에 대한 재판은 민병대가 조직한 임시 법원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응게마는 대법관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으며, 재판 과정도 피고인의 변호사들이 피고의 사형을 요구하는 등 불공정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응게마의 학정이 지속될수록 재판이 줄어들다가 후반의 몇 년은 아예 모든 정적들이 재판도 거치지 않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에서 승진하는 것은 '권력의 축적', 다시 말해 응게마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어 위험한 일로 간주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반정부 인사로 '''의심되는''' 사람이 투옥되면 이와 동시에 수감자의 가족들에게 [[연좌제]]가 적용되어 그 사람의 아내와 자녀들 등 가족 전체, 심지어 그들을 동정한 사람들까지 무기한으로 투옥되고 처형당했으며, 그들의 아이들은 투옥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교육을 받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정적들은 재판도 안 거친 상태로 총알이 비싸다는 이유로 고문을 가하기 전에 밧줄로 꼰 막대기로 사지가 결박되거나 채찍, 쇠파이프, 나무 몽둥이로 구타당한 후 공개적으로 [[교살]] 혹은 [[생매장]]하거나, 긴 도랑을 파게 한 뒤 그 도랑의 썩은 물에 익사시키거나, 삽이나 곡괭이, 심지어 쇠창살로 머리를 가격하는 방식으로 처형되었는데, 이렇게 처형된 응게마의 정적들은 [[효수]]되었다. 또 응게마의 부하들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여성 수감자를 강간하거나 15세밖에 안 된 소녀들을 공개적으로 강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응게마는 1969년 2월 22일 '마시아스와 함께 행진하는 청년(Juventud en Marcha con Macías)'이라는 준군사 조직을 만들며 이 조직을 자신의 친위대로 삼았는데, 이 단체에 가입한 청년들은 남녀 상관없이 응게마를 절대적인 숭배 존재로 만들고자 응게마의 반대파들에 대한 고발, 약탈, 고문, 강간, 처형에 가담했으며, 그들의 감시가 너무 심한 나머지 적도 기니에 사생활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가족을 위시한 모두를 감시하며 '반혁명분자'로 의심되면 부모까지 고발하는 등 나라를 온통 밀고 속에 빠트렸고, 덤으로 이들은 오만 악행들을 저질러도 전혀 처벌받지도 않았으며, 종종 술에 취한 채로 목격되었을 정도로 기강도 해이했다. 응게마는 이에도 만족하지 않아 1972년에는 '인민 민병대(Milicia Popular)'라는 이름의, 팡족의 민간 자원봉사자 2천 명의 회원을 가진 또 다른 준군사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응게마가 [[민병대]]에 집착한 이유는 적도 기니의 군대를 식민지 시절과 밀접하게 관련된 조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반체제 인사 한 명을 없애기 위해 반체제 인사가 사는 마을 전체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대통령이 손수 내려 젖먹이 아기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의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되는 일이 잦았고, 대통령이 직접 장관들의 부인들이 갇힌 감방을 찾아가고는 그들을 강간한 뒤[* 응게마는 장관들에게 이 광경을 강제로 지켜보게 했다.] 군대에게 넘겨주던 판이었으니, 응게마가 정적들을 [[마체테]]로 찔러 죽인 뒤 이들의 시체를 [[상어]] 먹이로 던져줬다거나, 응게마가 단순히 [[인육]]을 먹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궁으로 보내진 정치범을 손수 처형하고 그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응게마가 인육을 먹었다는 주장에 따르면 응게마는 인육을 정력제처럼 여겼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식인 루머는 아민과 보카사에게도 돌았으나, 이 둘의 식인 루머는 후에 무혐의로 결론났다. 이후 조카인 테오도로 오비앙과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라이베리아]]의 [[찰스 테일러(정치인)|찰스 테일러]]도 식인설이 돌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